'아이큐가 300' 어느 천재의 파란만장했던 삶
윌리엄 제임스 시디즈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스털링은 250~300으로 측정했다.
2세에 영어와 라틴어, 프랑스어를 사용할 수 있었고, 3세에는 독학으로 그리스어를 깨우친다.
4세부터 해부학에 관한 학술 논물을 집필했고, 8세에는 8개 국어를 사용했으며 MIT와 하버드 의대에 합격했지만 너무 어려 입학을 거부당한다.
11세에 수학 교수들에게 4차원 공간에 관한 강의를 했고, 높게 평가되어 하버드에 입학하게 된다.

1910년, 하버드에서 학생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으며, 왕따를 당해 신경 쇠약으로 요양소에 잠시 보내지게 된다.
1914년 하버드 학사 학위를 받고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동료 교수의 시기와 학생들보다 어린 나이로 질투와 조롱을 당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교수직을 사퇴하게 된다.

사회에 많은 환멸을 느끼게 된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숨어 지내기를 희망했다.
수학과 과학을 포기하고 이름까지 바꿔 지내게 되는데, 1924년 뉴욕 헤럴드 기자 트리뷴은 월스트리트의 사무실 중 하나에서 그를 찾게 된다.
"1909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가 현재 주 23달러를 받으며 금고를 계산하는 데에 그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라며 보도하게 된다.
뉴요커 잡지는 과거의 신동의 몰락을 기사로 작성해 재미있고 우스운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개인 정보 침해에 대해 뉴요커 잡지와 7년간 싸운 끝에 연방 대법원에서 패소하게 된다.
법원에서는 그는 공인으로 판단이 되며, 프라이버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 40개의 국어를 구사하며 뛰어난 지성을 가진 그를 질투하고 조롱한 사회와 여론에 의해 그는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키고 사회에서 완전히 은둔생활을 한다.
1944년 보스턴의 한 임대 룸 숙소에서 의식을 잃은 시디스를 집주인이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역사상 가장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천재는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47세 나이에 뇌졸중으로 홀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