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들은 자신이 거느리는 종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몸에 문신을 새겼다.
고려시대에는 범죄자 혹은 노비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낙인을 찍었다는 사료가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노비에게 낙인을 찍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노비가 도망치다 잡히는 경우에 남자는 왼쪽 뺨에 奴(노)자를, 그리고 여자의 경우에는 오른쪽에 婢(비)자를 새겨 도망친 것에 대한 형벌로 삼았다.
이렇게 먹물로 몸에 글을 새겼으나 형을 받은 죄인이 즉시 물로 씻거나 입으로 빨아 지워버리는 일이 잦았다는 설도 전해진다.

이에 ‘경국대전’에서는 강도범에게 ‘강도’ 두글자를 얼굴에 새기고 먹물이 깊이 스며들기를 기다려 3일이 지난 뒤 풀어주는 규정도 담겨있다.
낙인이 찍힌 노비는 노비 중에서도 가장 천한 부류로 분류됐다.

이뿐만 아니라 범죄에 대해서도 옷으로 가려지는 부위가 아닌 얼굴에 새기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마에 경(黥)을 새기는 것이다.
얼굴에 ‘경’이 새겨지면 어떤 범죄의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으로 평생 이런 상태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 형벌에서 ‘경을 칠 놈’이라는 말이 유래됐다.

조선시대 후반기에는 신분사회가 워낙 요동을 치고, 도망 노비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낙인을 찍는 사례가 줄었다.
이러한 형벌은 조선 영조시대에 이르러서야 폐지되었다고 한다.